사람들은 가끔 ‘누가 어떠하더래’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어떠하더래’라는 말 속에는 부정적인 말들, 허물이 되거나 누가 되는 말들이 들어갑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어떠하더래’에서 ‘누가’에 해당하는 당사자에게 ‘어떠하더래’라는 말이 얼마나 큰 아픔이고 짐입니까? 그런데 그런 말을 이야기하고 다니면 그 사람 입장에서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사람이 알게 되면 말한 사람을 미워하거나 자칫 대적하는 관계까지 될 수 있습니다.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연못에 돌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연못 속에 살고 있던 개구리들이 나와서 항의를 합니다. '제발 돌을 던지지 마십시오.' 그러자 아이들이 대답합니다. '우리는 그냥 장난으로 돌을 던지는 것뿐이야.' 그러자 개구리가 대답합니다. '당신들이야 장난으로 던지지만 우리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합니다.'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거장으로 서양 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가 쓴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저작인 [노트르담 드 파리(Notre-Dame de Paris)]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의 걸작이고, 서양 문학사 중에 가장 위대한 소설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레 미제라블이란 뜻은 ‘불쌍한 사람들’, ‘가련한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주인공 장발장은 조카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빵을 훔친 죄로 3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힙니다. 홀로 남게 된 조카가 걱정되어 탈옥을 시도했다가 19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되고, 13년 만에야 출옥하게 됩니다. 조카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 장발장은 우연히 만나 자신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해 준 성당 미리엘 신부의 은그릇을 훔쳐 달아나다가 경찰에게 붙잡혀 미리엘 신부에게로 끌려갑니다. 그러나 신부는 장발장과 경찰을 보면서 장발장에게 다시 만나 반갑다고 말하고는 내가 당신에게 은그릇뿐만 아니라 이 은촛대까지 선물로 주었는데, 왜 은그릇만 가져갔냐고 하면서 은촛대마저 내어 주었습니다. 장발장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훔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은혜를 나눠주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 어린 말 한마디가 그의 죄를 깨끗하게 했고 구원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이야기에서 미리엘 신부에게 있어서 사실이 무엇입니까? 장발장이 은그릇을 훔친 도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부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신부가 사실보다는 ‘진심’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과 ‘진심’은 다릅니다. 사실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말하는 것인 반면에, 진심은 가슴에 담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인 반면, 진심은 미래에 있을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장발장이 은촛대를 훔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부는 사실을 말하는 대신에 가슴속에 품고 있는 진심을 이야기했습니다. 신부의 진심이 무엇입니까? “난 정말 저 불쌍한 사람에게 은그릇만이 아닌 은촛대도 주고 싶다. 난 저 사람이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 살기를 바란다. 난 그가 다시 감옥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가 행복하길 바란다. 그가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발장이란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그에 대한 사랑과 구원 때문에 은그릇뿐만 아니라 은촛대까지 내준 것이 신부의 진심입니다.
성도에게 요구되는 바가 있습니다. ‘누가 어떠하더래’라고 아픈 사실을 들추어내거나 소문내는 것이 아닌, 미리엘 신부처럼 한 영혼,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허물을 덮어주고, 연약함을 품어주는 진심을 말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 2:13). 사람들을 긍휼함 없이 매정하게 대할 때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며, 반면에 사람들을 긍휼히 여길 때 심판을 이깁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이요 부족함 많고, 결함 많은 나를 얼마나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해 주십니까?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 수 없습니다. 깨닫고 보면 인간 모두가 불쌍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그 어떤 사람이든지 긍휼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혀를 다스리지 않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신앙은 헛된 것입니다.”(약 1:26, 새번역). 이는 언어가 신앙과 직결된다는 말씀입니다. 쓰는 언어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신앙이 헛것이 될 수도 있고, 참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b), “너희 말은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골 4:6). 말을 아름답고 덕스럽고 복되게 이루어 갈 때 참된 신앙을 이룰 수 있고, 하나님의 복과 능력과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