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울은 아덴에서 복음 전할 때 대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리고나서 복음을 전할 때 더 이상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 "다만"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오직, 오로지, 전적으로 성령의 능력으로만!”이란 뜻입니다. 바울은 더 이상 자신의 방법을 섞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혼합하지 않았습니다. 순수하게, 전적으로, 오직 성령의 능력에만 의지했습니다.
그 결과로 고린도에 강력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우상 숭배자들, 음행하는 자들, 탐욕스러운 자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불가능한 일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는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5). 이 말씀이 바울의 결론입니다. 믿음의 기초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에 근거한 믿음은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믿음은 절대로 견고합니다.
18세기 영국은 영적으로 암흑기였습니다. 교회는 형식화되었고, 사회는 부패했습니다. 이때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와 존 웨슬리(John Wesley)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신학 논쟁이나 철학적인 설교 대신, 단순하고도 뜨겁게 십자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조지 휫필드는 당시 최고의 웅변가였지만, 그는 자신의 말솜씨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설교 전에 항상 고개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 말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말하게 하소서." 그가 야외에서 설교할 때, 수만 명이 모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광부들의 얼굴에 눈물 자국이 흐르는 것을 보며 휫필드는 이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영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영국 사회가 변화되었습니다. 역사가들은 바로 그때 영국에 대각성 부흥이 없었다면 영국은 프랑스처럼 유혈 혁명을 겪었을 것이고, 나라가 대혼란에 빠졌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성령의 능력과 역사가 한 나라를 구원한 것입니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한국인의 마음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907년에 한국의 평양에 있는 장대현 교회에서 길선주 목사를 비롯한 성도들이 자신들의 죄를 통곡하며 회개할 때, 성령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지식이나 그 어떤 방법이 아닌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통해 한국 교회의 대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북아프리카의 한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그는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그는 이슬람권 선교를 위해 10년간 아랍어를 공부하고, 이슬람 문화를 깊이 연구했습니다. 그러했던 그가 이슬람권 사람들의 언어로,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며, 논리적으로 복음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15년이 지나도록 단 한 명의 회심자도 없었습니다. 그는 좌절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준비했는데, 왜 열매가 없는가?" 그는 탈진 상태로 본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지역에 다른 선교사가 파송되었습니다. 그녀는 특별한 학력도, 뛰어난 언어 능력도 없었습니다. 아랍어가 서툴렀고, 이슬람 신학이나 문화도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한 가지,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성령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매일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이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서툰 아랍어로, 때로 는 몸짓으로 단순하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눴습니다. 6개월 후, 한 이슬람 여성이 꿈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며 찾아왔습니다. 그 녀는 선교사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말은 서툴지만, 당신을 통해 다른 능력이 느껴집니다." 그녀가 회심했고, 그녀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2년 만에 작은 가정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전해드린 이야기들은 사람의 지식과 능력과 방법을 총동원해도 되지 않던 일이 성령의 능력으로 순식간에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우리에게도 이 "성령님의 나타나심과 능력"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영적인 세계가 활짝 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것이 없다면, 아무리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무의미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성령님을 모시고, 성령님의 다스림 속에서 사는 것은 선택이 아닌 절대로 있어야만 할 가장 중요한 사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