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입니다.
아버님, 어머님 보세요. 우리는 당신들의 기쁨조가 아닙니다. 나이 들면 외로워야 맞죠. 그리고 그 외로움을 견딜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고요. 자식 손자 며느리에게서 인생의 위안이나 기쁨이나 안전을 구하지 마시고 외로움은 친구들이랑 달래시거나 취미생활로 달래세요. 죽을 땐 누구나 혼자입니다. 그 나이엔 외로움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고 나이 들어서 젊은이 같이 살려하는 게 어리석은 겁니다. 마음만은 청춘이고 어쩌고 이런 어리석은 말씀 좀 하지 마세요. 나이 들어서 마음이 청춘이면 주책바가지인 겁니다.
늙으면 정신이 쇠퇴해 판단력도 줄어드니 말을 조심해야 하고 남의 일에 훈수 드는 것도 삼가야 하고 특히 젊은 사람보다 많이 알고 대접받아야 한다는 편견도 버려야 합니다.
나이 든다는 건 나이라는 권력이 생긴다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이 소멸해 간다는 걸 깨닫고 혼자 조용히 물러나는 법을 배우는 과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화를 몇 개월에 한 번을 하든, 1년에 한 번을 하든 아니면 영영 하지 않아도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세요. 그것 가지고 애들 아빠 그만 괴롭히세요! 마지막으로 이번 설날에 아이들 데리고 몰디브로 여행가니까 내려가지 못해요. 그렇게 아시고 10만 원 어머니 통장으로 입금해 놓았으니 찾아 쓰세요.
시어머니의 답변 메시지입니다.
고맙다. 며늘아! 형편도 어려울 텐데 이렇게 큰돈 10만 원씩이나 보내주고. 이번 설날에 내려오면 선산 판 거 90억 원하고, 요 앞에 도로 난다고 토지 보상 받은 거 60억 원 합해서 3남매에게 나누어 줄랬더니 바쁘면 할 수 없지 뭐 어쩌겠냐? 둘째하고 막내딸에게 반반씩 갈라 주고 말란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니? 여행이나 잘 다녀와라. 설날은 이 에미가 잘 지내마.
시어머니의 답변에 다시금 며느리가 답변했습니다.
헉! 어머니, 친정 부모님 한테 보낸 메시지가 잘못 갔네요. 친정에는 몰디브 간다고 하고서 연휴 내내 시댁에 있으려고 했거든요. 헤헤. 어머님 좋아하시는 거 잔뜩 사서 내려갈게요. 항상 딸처럼 아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Ps(추신)이라 해놓고, 오늘은 어머님께 엄마라고 부르고 싶네요. 엄마 사랑해요.
다시 시어머니가 보낸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며늘아! 엄마라고 불러줘서 고마운데 이걸 어떡하면 좋니? 내가 눈이 나빠서 만을 쓴다는 게 억으로 적었네. 선산 판 거 90만 원, 보상받은 거 60만 원해서 설날 상 차리려고 장 봐 놨다. 얼른 와서 설날 음식을 만들어다오. 사랑하는 내 딸아. 난 너뿐이란다!
마음을 착하게 곱게 써야 함을 풍자한 우스개 이야기입니다. 착함이란 연약한 이들에게 마음을 예쁘게 쓰고, 힘이 되어주는 것, 이웃에게 선함을 보이고, 기쁨과 유익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약한 이들, 이웃과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로 직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이들, 이웃을 잘 섬기는 것을 무척 기뻐하십니다.
초대 교회였던 예루살렘교회에서 처음으로 집사를 선택할 때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행 6:3)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일할 일꾼들은 신앙적, 인격적, 도덕적으로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그렇게 됨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한 삶의 결과입니다(행 2:45~47). 그러한 사실은 전도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전도라는 것은 성도들이 착한 삶, 빛된 삶을 믿지 아니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 듣고, 인정받을 때 전도는 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섬기는 교회가 부흥하는 길은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하기 전에 성도인 내가 먼저 아름다운 본을 보이고 칭찬과 인정받는 삶을 사는 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삶을 사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초대 교회처럼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을 더해 주십니다. 교회 부흥의 가장 중요한 관건이 성도인 내가 빛 된 삶을 사느냐, 살지 않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복만을 기원하는 기복주의 신앙에서 문제 되는 바는 올바르지 못한 신앙, 올바르지 못한 삶을 살면서 오직 복만 추구한다는 데 있습니다. 올바르지 못한 가운데서 주어진 복이라면 그것은 결코 복이 될 수 없습니다. 복으로 치장된 결코 오래 가지 못하는 가짜 복이요, 일시적인 복일뿐입니다. 우리의 삶에 진정한 하나님의 복, 일시적이지 아니한 지속적인 탄탄한 하나님의 복의 출처가 바로 올바른 신앙, 올바른 삶, 예수님을 닮은 올바른 인격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