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심리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 중에서 95% 내외, 즉 대부분의 사람이 열등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는 잘하는데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있고, 반대로 외모는 자신이 있는데 머리가 좋지 않아 열등감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은 있는데 집안이 좋지 않아 열등감이 있고, 반대로 집안은 좋은데 능력이 없어 열등감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사치이기는 합니다만, 사람들은 그렇게 무언가 하나씩은 다 열등감이라고 하는 가시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인류 역사에 오고 가는 사람 중에 가시가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원하지 않을지라도 가시는 인간 누구에게나 있습니다.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도 이런저런 가시들이 있지 않습니까? 나이 많아지면서 오는 쇠약해짐이나 건강의 장애, 가족 간 불화나 자녀들 양육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음, 생업이나 학업의 어려움, 인간관계의 손상, 진로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등 이런저런 가시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시만 탓하고 체념하면 거기에서 끝입니다.
조개에서 영롱한 진주가 탄생한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것입니다. 조개가 입을 벌리고 있으면 바닷물이 철렁거리면서 모래 알갱이들이 조개 속으로 들어갑니다. 모래 알갱이들이 조개의 살점에 들어가 쓸리면서 조개는 고통스러워하고 진액을 내고, 오랜 세월 끝에 영롱한 진주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날카로운 모래일수록 더 강하고 빛나고 값진 진주를 만듭니다. 돌이나 나무 등으로 아름다운 작품, 존귀한 작품을 얻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칼로 자르고 깍고 다듬어야 합니다. 아무런 가치도 없어 보이는 차돌맹이 같이 생긴 원석의 돌을 많은 부분 깎아 내고 다듬어야만 값진 다이아몬드가 탄생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도 원치 아니하는 바가 가시요 고난이지만, 그것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고 성숙하게 됩니다. 가시는 마치 자동차의 브레이크와도 같습니다.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없어 마냥 질주하기만 한다면 타인도 죽이고 본인도 죽는 감당할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나고 맙니다. 가시는 브레이크처럼 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하도록, 그리하여 위험과 위기를 막아주는 도구입니다. 그러한 사실들에서 한 가지 더, 가시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극복할 때 그 가시가 오히려 큰 복으로 전환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가시는 그저 가시로 위장한 하나님의 복일 뿐이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고 이중표 목사의 생전 간증입니다. 시골 교회에서 시무하고 있을 때 성도 중에 가시 같은 분이 있었습니다. 가시 교인을 뽑아내고자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님, 저 가시 교인 때문에 목회를 못하겠습니다. 설교도 찌르고, 매사에 찌르니 너무 아파서 목회가 안 됩니다. 그 가시 교인은 지금까지 많은 목사를 찔러 교회를 떠나게 했고, 저도 견딜 수 없습니다. 저 묵은 가시를 다른 데로 보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종아, 그가 갈 데가 없다. 그 가시를 누가 받아 주겠냐? 그냥 너에게 있는 것이 좋다.”라고 응답하시더랍니다. “주님 그러면 그 늙은 가시를 천당으로 일찍 데려가 주옵소서.”라고 했더니 하나님께서 “아직 때가 안 되었다.”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능하신 주님, 병든 자를 고치시던 그 능력으로 그 가시 교인을 고쳐 주옵소서.”라고 했더니 “병든 자를 고칠 수 있었고,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었지만, 가룟 유다는 못 고치고 데려 내가 죽었다. 너도 고칠 생각 말고 너나 죽을 생각을 해라. 그 가시를 뽑으려다가 네 명대로 못 살고 죽을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얼른 깨닫고서 “주님, 앞으로 가시를 손대지 않겠습니다. 나를 죽여주옵소서”라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가시가 찌르지만 아프지 않았으며, 얼마 후 가시 같은 교인이 가시 노릇을 그만두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사람 가시는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기도나 금식으로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가시를 통해 가시에 찔림 받던 내가 하나님 안에 온전히 거하고, 내가 죽고, 변화될 때 가시의 문제가 해결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어떤 가시일지라도 하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문제 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질병에서 치유받는 복, 죽는 사람이 살아나는 것, 바다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는 것,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 훨씬 더 되는 사람들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은 것 등 초자연적인 그 모든 것을 두 글자로 기적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기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어떤 가시일지라도 하나님 안에 있는 자에게 문제가 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요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택하신 자를 붙잡고 놓치 않으십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렇게 되는 근거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라는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생명과도 같고,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이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가장 큰 것을 내어주셨기에 그것과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이 세상의 그 무엇을 주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대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는 자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안에서 사는 자에게 그 어떤 가시도 문제 되지 않는 또 다른 기적을 이루어 주십니다.